"시신 앞에 일렬로 세워놓더니…" 김정은 시대 '처참한 北 인권'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1-12-18 10:49   수정 2021-12-20 08:56

“처형된 사람 뇌에서 뇌수가 막 흐르는데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서 한 명씩 죽은 사람 얼굴을 보게 했다. 경고의 뜻이었다.”

“차에 실려 온 사형될 사람이 개처럼 끌려나왔다. 이미 거의 죽은 상태였다. 아무 소리도 못 듣고 말도 못하게 고막이 이미 나간 것 같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로 북한 정권을 잡은 지 딱 10년이 됐습니다. 김정은이 처음 집권할 당시만 해도 스위스에서 유학 경험이 있는 30대 젊은 지도자가 북한을 이끌면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비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증언들처럼 ‘김정은 시대’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을 고발한 보고서가 출간되며 이같은 기대는 허상에 그쳤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국제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지난 15일 탈북민들의 증언과 위성 사진 등을 종합한 ‘김정은 시기의 처형 매핑(mapping·지도)’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난 6년간 국내 입국 탈북민 683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위성지도와 공간지리정보(GIS) 기술 등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이 벌인 공개 처형 현황을 고발했습니다. 이 기간 증언을 통해 확인된 공개처형만 27건이었습니다. ‘공개처형’은 말 그대로 정권의 고문에 의한 사망, 수용소에서의 강제 노역에 의한 사망 등은 모두 제외된 채 일반 주민들을 모아놓고 진행한 처형만을 뜻합니다.
K-드라마 봤단 이유만으로...가족 보는 앞에서 총살형
확인된 공개 처형만 27건이었는데, 이 중 ‘남한 영상 시청 및 배포’가 7건으로 가장 많은 ‘죄목’으로 꼽혔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 정권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이같은 공개처형의 바탕이 됩니다. 이 법에 따르면 한국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15년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뿐 아니라 한국 도서와 음악, 사진도 처벌 대상입니다. 그런데 정작 김정은은 2018년 평양에서 레드벨벳 공연을 직접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북한은 지난 6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식 의제로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와의 투쟁”을 채택했습니다. 주민들의 이른바 ‘남조선식’ 언행이 바로 반사회주의의 대표 행태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북한 노동당 내 가장 큰 청년 조직인 ‘청년동맹’에 “고난의 시기에 나서 자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 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며 지어 일부 잘못된 인식까지 가지고 있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합니다.


보고서에 드러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온 주민이 보는데서 공개 처형을 한데 이어 화염방사기로 시체를 불태우기까지 했습니다. 2012∼2013년께 탈북한 한 사람은 평양에 살 때 이같은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합니다. 심지어 처형된 사람의 가족들은 맨 앞줄에 앉혀 이 장면을 지켜보게 했고, 아버지가 아들의 시체가 불타는 모습을 보다 결국 기절했다고 증언합니다. TJWG는 이번 보고서에서 “당국이 가족들에게 처형을 강제로 보게 했다는 진술이 빈번했다”고 밝힙니다.

한 탈북자는 북한 정권이 미성년자들도 총살형에 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사람은 “처형 후 시체를 발로 밟아서 반으로 접었다”며 “자루 하나에 시체 하나씩 넣었다”고 증언합니다.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이 공개 처형을 하며 사형수를 향해 “사회의 악”이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이영환 TJWG 대표는 “김정은 집권기에는 상대적으로 외부 시선을 의식해 실내처형, 비밀처형이 많아졌다”며 “처형의 잔혹함, 비인간적인 면모는 선대인 김정일 시대 못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힙니다.
17년째 채택된 유엔 '北인권결의안'에 한국은 3년 연속 불참
17일 유엔 총회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올해로 17년 연속입니다. 이번 결의안은 주민들을 향한 북한 정권의 고문, 성폭력과 자의적 구금, 정치범 강제수용소, 조직적 납치, 송환된 탈북자 처우, 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을 열거했습니다. “가장 책임있는 자들을 겨냥한 추가 제재를 권고한다”며 사실상 김정은을 직접 겨냥하기도 합니다.

17년째 통과된 결의안이지만 올해 결의안이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한국시간으로 김정은이 집권 10주년이자 김정일 사망 10주기에 결의안이 채택된 것입니다. 이를 의식한듯 북한은 더욱 크게 반발했습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결의안에 본회의에 상정되자 토론자로 나서 “북한인권결의안은 유럽연합과 미국 등 적대세력이 추진한 이중 잣대에 따른 적대 정책”이라며 “인간쓰레기 탈북자들이 날조한 거짓된 허구정보를 적국이 짜깁기한 것으로, 북한에는 인권 침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남북한 관계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이번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합니다. 올해로 3년 연속입니다. 이번 결의안은 미국과 유럽연합(EU)·영국·일본 등 60개국이 참여했습니다. 결의안 공동제안국은 초안이 작성된 이후에도 표결 전까지라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몰디브와 투발루는 마지막에 공동제안국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한 질의에 “우리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컨센서스 채택에 동참했다”며 “(총회 산하) 3위원회 채택 때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언뜻 보면 한국이 적극적으로 결의안을 찬성하고 나선 것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 컨센서스라는 표결 방식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반대 표결에 부치자고 하지 않는 이상 ‘동의한 것으로 간주’ 됩니다. 정부가 3년이나 공동제안국에서 빠지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것일 뿐인데 “컨센서스에 동참한다”고 표현한 것이죠.


특히 올해 결의안에는 “북한에서 송환되지 않은 6·25전쟁 포로와 그 후손들이 겪는 인권 침해에 대해 처음으로 우려를 표한다”며 국군포로 문제가 처음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국은 남북 관계 개선을 들어 또다시 북한 인권 문제에 눈을 감았습니다. 21세기 한반도에서 공개 총살이 이뤄지는 가운데 이를 대하는 ‘인권 선진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대응은 참 상반됩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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